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2일,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 2년,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로 제 19차 예술노동포럼이 열렸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 시행 및 보완에 꾸준히 애를 써 온 문화예술노동연대에서 주관,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주최하였다. 현재 예술인 실업급여는, 이직이나 실직 전 2년 동안 9개월 이상 고용보험을 납입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주요 기능 생략된 예술인 고용보험은 반쪽짜리
지난 2년 동안 영세사업주 혹은 개인을 위해 예술인 고용보험 신고와 상실 등 사무대행을 수행한 바 있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서인형 이사장은 고용보험은 노동자들이 실업에 대비하는 상호부조로 출발한 것으로, 지금은 노동자의 직업능력 개발과 고용안정사업이 아주 중요한 기능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 기능은 예술인 고용보험에는 빠져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에 직무능력개발과 고용안정이 빠져있다는 것은, 예술을 산업으로 보고 예술 노동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와 정책이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예술인 실업급여는 1900년대 초 빈곤구제를 위한 구제금융 수준이다.
그런데 이 구제금융조차 다른 직군의 사람들에 비해 많이 불리하다. 서 이사장은 "특히 저소득층에 더 불리하다"고 하면서, 월 200만원의 급여를 받고 일반 고용보험과 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실직 후 150일 동안 지급되는 실업급여가 일반 900만원, 예술인 574만원으로 예술인은 일반에 비해 훨씬 적게 받는다. 최저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용보험을 통한 무료 교육훈련 프로그램 혜택도 없다. (관련기사 똑같이 일하고 절반밖에 못 받는 예술인 실업급여)
30군데 문의했지만 무료로 해주는 곳 없었다
그나마도 어려운 행정요건으로 인해 가입 자체가 어렵다. 정부에서는 고용보험사무대행기관에서 무료로 대행해준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서이사장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무대행기관은 다른 일을 같이 의뢰하지 않으면 고용보험 사무대행만 별도로 의뢰받지 않는다"고 한다. 서이사장이 고용보험을 대행하게 된 사례 가운데에는, "30군데에 연락했지만 아무도 무료로 대행해주지 않아"서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을 찾아온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고용보험사무대행이 무료이긴 하지만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무사나 세무사는 자기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고용보험사무대행을 해주지 않는다. 특히 예술인 고용보험은 일반 보험에 비해 해지가 빈번하고 번거롭기 때문에, 영세한 업체이거나 개인일수록 사무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한다.
창작지원금은 긴급복지지원, 예술인파견사업은 예술인 부업지원
하장호 전 예술인소셜유니온 위원장은 예술인 고용보험이 반쪽짜리가 된 배경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2011년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예술인복지법에 포함되었어야 할 예술인 사회보험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복)에 급히 떠넘겼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책 설계 없이, 예복에서 고용보험을 대신할 예술인 지원사업을 설계 운영하였다. 긴급복지지원의 의미로 창작지원금제도가, 예술인 부업의 개념으로 예술인파견사업이, 교육지원 성격의 학습공동체지원사업 등이 만들어졌다. 복지가 예복의 사업으로 된 것이다.
그는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자 예복은 기존의 지원사업은 물론 예술인 고용보험, 산재보험 업무까지 수행하면서 업무적 혼선과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고 하였다. 정책 기반 없이, 예술인 고용보험이 없는 상태에서 예술인 복지제도부터 만들고 거기에 뒤늦게 반쪽짜리 사회보험(예술인고용보험)을 얹어 혼란이 가중된 셈이다.
고용보험법상 근로자 개념을 노무제공자로 확대해야
안명희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출판지부장은, 예술인 고용보험을 요구하던 문화예술노동연대가 막상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될 때 반대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노동의 형태가 다양화되는 시대에 고용보험법상 근로자 개념을 노무제공자로 확대 적용해 달라는 요구였는데, "예술인만 자영업자로 간주하여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예외적이고 시혜적인 조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법은 그대로 시행돼 예술인은 자영업자가 지위가 되었고, 직업적 권리와 보편적 복지의 극히 일부분만 예외적으로 적용받게 되었다. 법 실행 이후 이들은 예외적이고 시혜적인 법안일지언정, 그 적용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고용보험 대상이 출판, 언론, 방송작가 등으로 확대된 것은 "노동조합과 함께 지속적으로 투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용보험 이중 납부로 실업급여 자격 충족은 더 어려움
마지막으로 김태균 공연예술인노동조합 교육위원은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연평균 수입 491만원인 연극인의 경우, 대부분의 수입이 부업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고용보험료를 이중으로 냈는데 실업급여를 수령한 적이 있는 사람은 불과 5.4%였다고 한다. 고용보험 납부 이력이 일반과 예술인으로 양분되면서 보험료는 이중으로 내지만 실업급여 수급에 필요한 기본 자격은 여전히 충족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 위원은 "일정 금액 이상 무조건 가입 등 절차를 간단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합산 월 소득 50만 원이 넘을 것 같으면 그제서야 이전에 일했던 곳에 추가로 고용보험 이야기를 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고용보험 가입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더 어려운 제도이다.
김위원은 "일상이 실업상태인 예술인들에게 실업하면 도움을 준다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강조한 "문화를 창조하는 가치를 사회에서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는 말은 곧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혼돈의 무한루프를 끊어줄 시스템
현재 고용보험 가입 기준을 보자. "월 소득 50만 원 이상이면 고용보험 납입이 가능하며, 단기계약직일 경우 월 11일 이상이면 1개월로 간주하고, 11일 미만이면 매 월 일한 날을 합쳐 22로 나눈 것을 1개월로 간주한다." 기자가 이 말을 이해하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일단 이해하면 쉽지만 이해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행정문구이다.
게다가 예술인들은, 이 말을 이해하고 이를 행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도와준다는 관청에 가보면 담당자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전문가를 통해 준비된 서류를 가지고 오라"고 한단다. 그리고 그 '전문가'인 세무사나 법무사는 부가적인 이익이 없는 한 협조하지 않는다.
당장 정책 설계나 제도 개선이 어렵다면, '급여전용통장'을 개설하고 이를 고용노동부 시스템에 등록해 두면, 모든 노무에 대한 댓가가 그 통장으로 들어오고 이를 기반으로 고용보험이 자동 계산되고 납부되는 방식이라도 만들어 이 혼란을 잠재워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이 혼돈의 무한루프에 가난한 예술인들이 낭비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