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는 서울에서 가장 많이 찍히고 가장 적게 노래된 건물이다. 1969년에 첫 삽을 뜨고 1975년에 준공된 이 236.7미터짜리 송신탑은 엽서와 프로필 사진의 배경으로는 수십 년째 성실히 복무했다. 그러나 그 탑을 정면으로 불러 세운 노래는 없다시피 했다. 너무 뻔해서였을 텐데, 서울 사람에게 남산타워는 명소라기보다 그냥 늘 거기 있는 것이니까. 그 뻔한 것을 정색하고 노래로 만든 사람들이 일본인 뮤지션들이라는 사실이, 이 음반의 첫 번째 농담이자 마지막 논점이다. 마리코 & 유키에의 정규 1집 《남산타워》가 9월 4일 나왔다. 한국어 열 곡, 일본어 다섯 곡, 모두 열다섯 곡이다. CD는 500장 한정이고 한국어와 일본어 가사를 나란히 앉힌 12쪽 부클릿이 들어간다. 두 사람이 듀오로 함께 선 지 여덟 해 만에 내는 첫 정규작이다. 이 음반을 두고 할 수 있는 가장 게으른 소개는 "한류의 역방향"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음반의 진짜 사건은 국적이 아니라 시대에 있다. 2026년에 나온 이 신보는 복각도 샘플링도 아니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1960~70년대의 문법으로 쓰였다. 얇으면 얇은 대로 갔다 타이틀곡 「남산타워」부터 보자. 이 곡은
민중미술의 판화가 오윤(吳潤, 1946~1986)의 작고 40주기를 맞아 그가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열린다.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 새김에서 각인으로: 1946—1986, 오윤의 궤적〉은 9월 23일(수)부터 10월 12일(월)까지 서울 종로구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생전에 찍은 판화와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사후 판화를 아울러 오윤의 판화 전부가 한 전시장에 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주최 측은 이런 전작전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밝혔다. 오윤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의 판화를 실물로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십 년 사이 오윤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었고 경매에서 값이 올랐다. 도판과 화면으로도 널리 퍼졌다. 그러나 목판화는 인쇄물로 옮겨지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칼이 지나간 깊이, 종이에 눌린 자국, 먹이 번진 결이다. 이번 전시는 그 잃어버린 것을 되돌려 놓는 자리다. 판화를 고른 이유 —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나누려고" 1946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오윤은 소설 『갯마을』을 쓴 오영수의 아들이자, 동래 학춤을 이어온 집안의 외손이었다.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에 들어갔지만 첫 걸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문국주)가 주관하는 '2026 민주화운동기념공원 합동추모제'가 오는 9월 12일 오전 11시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광장에서 열린다. 개원 10주년 맞아 64명 열사 함께 기려 합동추모제는 올해로 5회째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안장된 민주열사 64명을 함께 기리고 이들이 남긴 민주주의의 뜻을 잇자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다. 올해는 공원이 문을 연 지 10년 되는 해다. 유가족과 민주화운동·추모단체 관계자, 정관계 인사와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열사들을 추모하고 지난 10년을 되새긴다. 추모제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김윤 국회의원, 조주환 이천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조순덕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의장,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위원 등이 함께한다. 추모사는 문국주 사업회 이사장과 권오을 장관, 김윤 의원이 맡고 답사는 강민조 유가족 대표(강경대 열사 부친)가 전한다. 문국주 신임 이사장의 첫 공식 추모행사 문국주 신임 이사장은 9월 8일 취임했다. 이번 추모제는 문 이사장이 취임 직후 유가족과 민주화운동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는 첫 공식 추모행사다. 문 이사장은 이날 유가족과 주요 내빈들과 함께 헌화·분
일본 아와지시마 애니메이션 파크 니지겐노모리가 2024년 큰 호응을 얻은 '고질라-1.0' 특별전을 9월 18일부터 12월 6일까지 다시 연다. 인기 어트랙션 '고질라 요격작전'에서 열리는 이번 기획전은 10주년을 맞은 니지겐노모리의 가을 하이라이트 행사다. 영화상 휩쓴 '고질라-1.0', 전시품으로 다시 만난다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이 연출한 '고질라-1.0'은 국내외 여러 영화상을 받으며 관객의 기억에 깊이 남았다. 이번 기획전은 영화 장면을 담은 사진 패널과 와다츠미 작전(해신 작전), 동상 등 작품과 관련된 귀중한 전시품을 다수 선보인다. 관람객이 영화의 세계관에 빠져들도록 꾸몄다. 감독 독점 인터뷰 영상도 특별 상영 기획전 기간에는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의 독점 인터뷰 영상도 관내에서 특별 상영한다. 신작 영화 '고질라-0.0' 개봉을 앞둔 2026년은 새로운 고질라의 해로 꼽힌다. 전 세계에서 고질라 열풍도 달아올랐다. 오는 11월 신작 개봉을 앞두고 니지겐노모리 '고질라 요격작전'에서 고질라의 세계에 몰입해 볼 기회다. 니지겐노모리는 어떤 곳 니지겐노모리는 모니터 화면이나 종이 위에서만 즐기던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 등 이른바 '이차원 콘텐츠'의
대한건축사협회(회장 김재록)가 주최하는 제18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개막식과 오프라인 상영 일정을 모두 마쳤다. 온라인 상영은 오는 20일까지 이어진다. 건축사회관에서 개막, 관계자들 대거 참석 개막식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건축사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재록 회장을 비롯해 이진철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관, 김수동 감독, 오카 히로모토 감독 등 건축계와 영화계 인사들이 함께했다. 김재록 회장은 개회사에서 "건축은 우리의 일상과 도시의 모습, 나아가 한 시대의 문화와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는 중요한 기록"이라며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우리가 마주하는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건축의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작은 구마모토 공공건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올해 개막작은 김수동 감독의 '프로세스: 진화하는 공공건축, 구마모토'였다. 완성된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 쌓인 사람들의 고민과 선택, 공공건축이 지역의 삶과 도시환경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에 주목한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관객과 만났다. 상영에 앞서 무대에 오른 김수동 감독은 작품의 기획 배경과 촬영 과정, 공공건축이
설치비의 절반이 되돌아왔다 김해와 영주와 군산과 안동에 아파트를 지은 시행사가 네 현장 모두 법이 정한 대로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설치비로 4억 7,285만 원을 썼는데, 그 가운데 2억 4,696만 원이 시행사 실질 대표에게 되돌아왔다. 방식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이 2013년 2월 21일 선고한 2012고합35 사건의 판결문에 적혀 있다. 대표는 직원에게 지시해 두 조형연구소가 실제 설치비용보다 부풀린 계약서를 쓰게 하고 그 차액을 자신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김해 현장은 5,800만 원을 지출하고 2,800만 원을, 영주는 1억 3,004만 원을 쓰고 7,093만 원을, 군산은 2억 1,203만 원을 쓰고 1억 2,525만 원을, 안동은 7,276만 원을 쓰고 2,276만 원을 돌려받았다. 되돌아온 비율은 현장마다 31퍼센트에서 59퍼센트 사이였고 넷을 합치면 52.2퍼센트여서, 법이 미술에 쓰라고 정한 돈의 절반이 미술이 아닌 곳으로 갔다. 대구고등법원은 2015년 12월 10일 이 네 건을 모두 유죄로 유지하면서 대표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돌려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 횡령으로 처리됐다. 설치비를 낸 쪽이 시행사 법인이었으므로 부풀린 차액을 대표 개
태워진 칠십칠 미터 1989년에 그림 한 점이 불탔다. 길이 77미터, 갑오농민전쟁부터 5·18까지를 담은 걸개그림이었고, 제목은 「민족해방운동사」였다. 전국 다섯 개 예술단체와 서른 개 대학 예술패 회원들이 석 달에 걸쳐 함께 그렸다. 이 그림이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여러 매체가 같은 문장으로 전하는데, 출정식에서 경찰과 백골단에 압수돼 소각됐다는 것이다.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태워졌는지를 적은 1차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슬라이드뿐이었다. 미술사학자 최열이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전시 때 찍어둔 필름이 보존돼 있었고, 서른일곱 해 뒤인 2026년 5월 그 필름을 바탕으로 이 그림이 다시 나타났다. 광주시가 개관한 미디어아트 전시공간에서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로 재창작한 영상 작품으로였다. 복원에는 석 달이 걸렸다. 77미터짜리 천 그림이 사라지고, 그것을 찍은 슬라이드가 남고, 그 슬라이드에서 영상이 만들어졌다. 걸개그림이 겪는 일이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 그림 때문에 사람이 감옥에 갔고, 그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1990년 9월 25일 선고된 90도1586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다. 판결문은 여러 쟁점을 다루는데, 그중 하나가 걸개그
새벽 다섯 시 2026년 2월 27일 새벽 다섯 시에 화가 황재형이 죽었다. 향년 74세. 유족과 가나아트센터에 따르면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최근 병원에 입원했고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부고를 실은 신문들이 그를 부른 이름은 거의 같았다. 광부 화가, 그리고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82년 중앙대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고, 재학 중에 같은 대학의 박흥순·전준엽 등과 미술 그룹 '임술년'을 만들었다. 주목을 받은 것은 1981년의 「황지330」인데, 황지 탄광 매몰 사고로 죽은 광부의 작업복 한 벌을 그린 높이 2미터가 넘는 그림으로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태백으로 갔다. 그림을 그리러 간 것이 아니라 살러 간 것이었고,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서 일용 노동자로 일하며 사십 년을 그렸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4월 30일부터 8월 22일까지 개인전 「회천(回天)」이 열렸다. 작품 65점으로 첫 개인전 이후 사십 년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였다. 전시장에는 초기의 탄광촌 작업복 연작부터 후기의 머리카락 초상까지 걸렸다. 나라와 자식에게 자신을 내준 은퇴한 광부를 그린 「아버지의 자리
파운드당 4센트 1944년 3월 6일 자 『타임』에 실린 기사는 뉴욕 플러싱의 정부 창고 이야기로 시작한다. 축축한 지하 납골당 같은 그곳에 낡은 화포 더미가 쌓여 있었는데, 어느 날 공문 한 다발에 따라 트럭 한 대가 후진해 들어와 그것을 맨해튼으로 실어갔다는 것이다. 기사는 그 화물이 무엇이었는지 곧바로 밝힌다. "거기에는 WPA가 어쩐 일인지 '배정 불가'로 판정한 수천 점의 성실한 이젤화가 있었다. … 트럭 위에서 흔들리던 그림 더미들은 폐품으로 팔렸다." 미국 연방정부가 예산을 들여 화가를 고용하고 그리게 한 그림들이다. 한 달 뒤인 4월 17일 『라이프』가 「WPA 미술의 종말」이라는 기사로 그 뒷이야기를 전하면서 가격이 처음 활자가 됐다. 롱아일랜드의 폐품상이 그 그림들을 파운드당 4센트에 사들였다는 것이다. 그림은 거기서 한 번 더 손을 바꿨는데, 커낼 스트리트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던 헨리 C. 로버츠가 곰팡이 핀 꾸러미를 넘겨받아 뒷방에 쌓아두자 화상들이 몰려와 한 점에 3달러에서 5달러씩 주고 수백 점을 낚아챘다. 『타임』은 그 그림들이 "꽃 그림, 시골 풍경, 준(準)추상, 고가철도가 있는 거리 풍경"이었고 "어떤 것은 유능했고 어떤 것은
명함에 「재사」라고 새겨 넣는 자 1857년 파리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저자는 쿠르베의 친구이자 그 무리의 대변인 노릇을 하던 비평가 샹플뢰리인데, 정작 그 책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 부르는 자는 누구든, 명함에 이름 다음에 「재사(才士)」라고 새겨 넣는 자만큼이나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책 제목으로 그 말을 쓴 사람이 서문에서 그 말을 쓰는 사람을 조롱한 것이다. 같은 서문에서 그는 -이즘으로 끝나는 말들을 "과도기의 말로서 딱하게" 여긴다면서,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인기를 얻을수록 그것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라고 썼다. 자기가 제목으로 삼은 말의 수명을 스스로 깎아내린 셈이다. 이유도 밝혀두었다. "나는 유파를 좋아하지 않고, 깃발을 좋아하지 않고, 체계를 좋아하지 않고, 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이라는 작은 교회 안에 나를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설령 내가 그 교회의 신이 된다 해도." 그는 그 말의 수명을 삼십 년으로 봤다. 비평가들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려고 발명한 무기이지만 "그것을 쓰는 자를 상처 입히는 종류의 무기"이며, 삼십 년을 넘기지 못할 과도